4년 동안 다녔던 어린이집을 퇴사하고 나는 장래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그 당시 코로나 이슈가 막 터졌을 때여서 다행인건 내가 바로 일을 구하지 않아도
눈치 볼 일이 없었고, 어디 나갈 일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고, 불행인건 내가 배우고 새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모두 막혀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을 거의 통으로 날려버릴 뻔 했던 나는 뒤늦게 큰 결심을 하고 하반기 숙명여대 놀이치료학과에 입학 원서를 내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어린이집은 아동중심을 보육철학을 기조로 하여 아동주도적 놀이로 보육이 이루어지는 재단 소속의 직장어린이집이었다. 아동의 개별적 특성을 존중하고, 교사의 아동존중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기를 굉장히 강조했던 어린이집이었던 터라,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아이들 개개인을 이해해가고 그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갔다. 또한 학습적 프로그램이 거의 없으며 일과가 아이들의 자유놀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즐거움을 경험하고, 아이들이 놀이에서 표현하고 나타내는 마음들을 엿보면서, 놀이는 아이들에게 가장 우선이 되어야하며 필수적이라는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좋은 환경이었지만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그를 압도하는 스트레스 상황을 내가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내가 힘들었던 것은 단체생활이기 때문에 한명의 교사가 적게는 5-7명, 많게는 15-20명까지도 혼자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부모님들이 가장 예민하신 안전 문제에 촉각이 곤두서서 아이들의 거의 모든 행동적인 부분을 통제했어야만 했고, 갈등이 이곳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을 때 아이들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못한 채 해결을 강요하거나 다소 단호하게 얘기해야하는 상황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이러한 면에서 교사 자격에 대해 큰 회의감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또 다르게 마음이 불편했던 점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양육자와의 분리불안을 겪는 아동, 다른 친구들을 고의로 때리고 무서운 말을 하는 아동, 너무나 산만하여 친구들의 놀이를 방해하는 아동, 부모에게서 충분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거나 격려를 받지 못해 집착하거나 자존감이 낮은 아동 등 정말 각양각색의 문제행동들을 보이는 아이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보육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부모의 클레임을 피하기 위해 문제를 돌려서 말하거나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했어야 했고, 심각하다 생각하는 문제는 정기면담과 따로 전화를 통해 부모님께 대처를 알려드리기도 했지만, 사실상 가정에서 보육교사의 지침을 따라 행동하는 부모는 드물었다. 게다가 직장어린이집 특성상 부모 모두가 맞벌이였기 때문에 애초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기도 했고. 아이의 문제행동은 계속되었고 양육자의 부적절한 대처방식은 아이를 더욱 괴롭게 하기도 했다.
일을 쉬면서 위처럼 내가 불편했던 부분들에 대해 떠올리며, 아동과 함께 놀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아픔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그렇게 찾은 길이 바로 놀이치료사의 길이었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가장 유서 깊고 좋은 학문적 환경이 마련되어있는 숙명여대 놀이치료학과를 발견하게 되었고 다른 학교들은 돌아볼 생각도 없이 오직 이곳만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언가 새로 도전하고 시도함에 있어 개인적으로 큰 불안을 느끼는 성향이라 마음을 먹기까지 다소 오래 걸렸지만, 다행히 나는 백수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온전히 할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원서를 넣고 면접이 있기 전까지 한 달 남짓한 시간을 꼬박 스터디카페에 출석하며, 수능공부가 한창인 어린 친구 옆에서 자극을 받아가며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 입학해 수업을 들으면서는 낯선 심리학 용어들과 이론들, 여러 정신병리들의 이름에 당황하기도 하고 나만 빼고 모두들 아는 눈치여서 그 점에서 좀 위축되기도 했다. 그래도 정말 좋았던 점은 공부를 하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고, 교사로서 경험했던 나의 불편감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지 내 내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기도 했다. 어떤 수업은 들으면서 위로를 받기도 했고, 치료사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성도 잡혀갔다. 그렇기에 놀이치료사에 비전이 있으신 분들은 너무 겁먹지 말고 훌륭한 교수님들과 든든한 동기, 선배들이 있는 이곳에서 차근히 공부해나가시면 좋을 것 같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에는 그나마 학교상담실이 마련되어 있지만 어린이집, 유치원에는 아동을 위한 공간이 없다. 아이들이 힘든 마음을 표현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상담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 같다. 또한 놀이는 아동의 언어로써 존중받고 아이들이 누려야만 하는 것이지만, 부모의 시각에서 놀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며 한글, 수학, 영어공부를 언제 시작하면 좋을지 교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실상이다.
나는 아동에게 잃어버린, 박탈당한 언어를 되찾아주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놀이치료학과에 진학했다. 그들의 언어로 자신의 불안, 공포, 분노, 부정적인 감정들을 마음껏 쏟아내고 다시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그 감정들을 받아내는 치료사가 되어주고 싶다. 보육교사, 유치원교사로서 저와 같은 고민이 있으시거나, 아이들의 건강한 삶과 행복을 바라며, 놀이의 위대한 힘에 대해 관심이 있고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숙명여대 놀이치료학과가 당신이 가는 길에 큰 이정표와 힘이 되어줄 것이다.
* 원서를 어떻게 보고 면접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다른 선생님들의 수기에 너무나 자세하고 친절하게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면 될 것 같다. 제 경험을 알려드렸다간 오히려 훤한 앞길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이제는 코로나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져 면접에서 자신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자신 있게 전달하시면 될 것 같다. 예비 신입생분들 모두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